시사잡지 중에 정기구독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애독하는 잡지가 세 종류가 있다. 하나는 경향 신문에서 발간하는 '위클리 경향'과 한겨레 신문에서 발간하는 '한겨레21', 그리고 마지막으로 옛 시사저널에서 삼성사태에 반발하여 이탈한 기자들이 만든 '시사IN'이다. 이 중에서 시사 IN을 가장 많이 사서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Daum 메인 화면에 글 제목과도 같은 타이틀로 기사가 올라왔다. 제목을 보니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 보니 보수보다는 진보(딱히 이렇게 구분짓는 것도 합리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경향을 크게 놓고 이야기 할 때 갖는 입장 차이로 규정할 따름이다.)매체에서 올려놓았거니 생각했다.

나름 흥미로운 주제여서 클릭을 하고 기사를 확인해 보았더니 예상 밖으로 낯익은 시사 IN의 주진우 기자가 쓴 글이었다. 글을 내용은 양비론을 넘어서 삼비론에 가까웠다. '정권 편향적인 인사'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잘못' 임명했고, 그 인사들을 이명박 정부가 용이하게 활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예전에 신방과 과목을 들었을 때 교수님께 들었던 내용이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한국의 기자들은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한다. 그건 어떻게 보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기도 할 수 있는데, 즉 자신이 기사를 쓰기 위해 이리저리 취재를 다니다보면 학식이나 명망이 높은 전문가 집단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또 현안에 대한 실무를 맡는 정부 당국의 담당자에게 취재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모은 정보를 토대로 기사를 작성하다 보면, 양 그룹군에 장단점을 파악하게 되고, 그것을 종합하여 아우르는 자신이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자의 마인드는 하루 아침에 형성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오랜 기간 취재 노하우를 쌓게 되다 보면, 그 경험이 자신의 시야를 가리는 편협함과 아집으로 나타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직업군에 있고, 어떤 일을 하게 되든 자만심은 스스로가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적이다.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고, 자신의 위치와 위상이 상승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인간 본성의 약점이기도 하다. 

필자가 주진우 기자를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기사에서 묻혀 나오는 느낌이 딱 이와 같았다. 길지 않은 기사에 마치 자신이 3자적 관점에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식으로 비판에 결론까지 내버리니 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시사 IN을 애독하는 독자로써 이 기사에 대해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듯 싶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대략 몇 가지 잘못 재단한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용인술은 재임 기간 내내 '코드 인사'로 불리우며 언론에게 뭇매를 맞았던 부분이다. 물론 일부 보수 언론들이 노 전 대통령의 인사를 폄훼하기 위해 만들어낸 용어겠지만, 시사 IN의 이번 기사를 보면 이는 결국 과대포장에 왜곡보도였다는 셈이 된다. 더불어 노 전 대통령이 자기와 같은 철학을 가진 인물만 중용했다는 것도 '거짓말'인 것이다. 즉 이는 보수-진보 따지지 않고 다양한 색깔을 지닌 인물들을 두루 기용했다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편향없는' 인사를 통해 등장한 인물들이 성격이 다른 현 정부까지 직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그의 인사가 '객관적'이었고 '합리적'이었고 '중립적'이며 '배포'가 두둑했다는 증거가 되면 모를까, 그에게 그 인사들 개개인의 정권 친화적인 부분까지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아전인수'격 해석일 뿐이다.


두 번째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철학과 국정 운영 스타일이 다르다는 부분이다. 기자는 이 부분을 매우 간과하고 기사를 작성한 것 같은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록 소신과 고집을 넘나들며 국정을 운영하였지만, 그 과정은 대체적으로 민주적이었다. 최근에 정부 산하 기관에 근무하시는 분께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참여정부 시절에는 정부에서 선임한 인사가 발령받아 오게 되면, 조직 내부의 게시판에 찬.반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졌다고 한다. 즉 일반 직원들도 선임되는 간부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이러한 다수의 의견은 어느정도 반영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는 그러한 모습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즉 관계 부처 고위 인사가 들러서 상황을 설명하고, 잡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부탁하고 가면, 조직 내부의 그 누구도 정부의 인사 발령에 딴지를 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참여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통치 스타일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적인 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도 마찬가지다. 비록 코드가 다르고, 성향이 달라도 일단 임명장을 주어 일을 맡겼고, 그들도 굳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평소 소신대로 조직을 운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다르다. 자신들과 노선이 같고, 사고 방식이 같고, 뭔가 하나라도 연줄이 닿아야 기용하는 상황에서, 참여 정부 시절의 고위 공직자들 역시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현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다면 결국 박차고 나오게 되는 것이고, 아니라면 어떻게 해서든 직위를 유지하기 위해 '기회주의적' 즉 정권 친화적인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즉 이것은 노무현의 문제라기 보다는 각자 개인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자는 통치 스타일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들까지도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과 개개인의 소신을 문제삼기 보다는 모두 노 전 대통령의 '잘못된 인사'로 규정지었다. 이 얼마나 단순하고 편한 논리인가. 

마지막으로 한편으로는 한국 정치판에는 그만큼 보수적인 인물이 많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설령 노무현 대통령이 진짜 일부 보수 언론의 보도처럼 자신과 코드가 부합한 인사들로만 정부를 구성하려고 했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반세기동안 한국의 통치 계층은 지속적으로 보수적인 인사들의 차지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진보적 성향을 지닌 인물로 기용한다는 것이 그 정도였고, 그것만으로도 임기 내내 '코드 인사'한다며 비난을 받던 그였던 것이다. 당연히 정권이 바뀐 뒤에 그들이 본래 지닌 속성을 드러내 현 정부와 코드를 맞춘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이 또한 '노무현 탓'이라고 하니 이 또한 지난 5년간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멘트가 아니던가.


아랫사람은 윗사람 하기 나름이다. 가장 상위에 있는 사람이 압력을 넣지 않고 자율성을 부여하고 민주적으로 통치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아래로 그 영향력이 파급되기 마련이다. 특히 행정부와 같은 관료조직은 그 구조상 정도가 훨씬 클 것이다. 그래서 그 최고 통치자가 바뀌고 통치 스타일이 바뀌자 아랫사람들도 드러나지 않았던 기질이 드러난 것이다. 자신이 지닌 부와 명예와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슷한 통치 방식을 보여주었다면  그들도 정치적으로 자신의 일신을 지키려고 하기 보다는 한 조직의 수장으로써 그 업무에 소신있게 전념하지는 않았을까?

이러한 구조적 문제와 개개인의 정치적 신념을 배제한 채 그저 이 모든 상황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사 실수'로 간단명료하게 결론짓는 기자의 성급한 일반화를 보고 그의 짧은 식견에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차라리 그렇게 변절한 자들에 대해 국민의 공복으로써의 자신을 망각하고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며 정치적 신념을 저버린 부분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썼다는 차라리 훨씬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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