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는 여러 시대의 경험을 바탕으로한 다양한 견해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는 기본적으로 사회의 갈등을 조정하고 질서를 유지시키는 작용으로 전제하였을 때, 특히 사회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대립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주장을 최대한 반영하려는 활동을 정치의 본질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문국현의 정치 이념은 무엇인가?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정치적 신념은 대체 무엇인가?

지난 대선 그는 충분히 보수적 성향을 지녀도 이상할 것이 없었던 유한킴벌리의 사장이자 킴벌리 클라크의 동아시아 총괄사장이라는 능력있는 CEO임에도 불구하고, 기업을 운영하면서 보여줬던 일화들과 그리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사람 중심 진짜 경제'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등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진보 및 개혁적 성향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기존의 정치인들을 거리낌없이 비판하고 그들과의 차별성을 강하게 부각시키기에 이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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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같은 기치를 내세우며 진보 및 개혁 진형의 대안인물로 급부상했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한 당시 정동영 후보와 통합신당의 후보단일화를 거부한 채 끝까지 대선 레이스를 완주하여 그가 제시한 비전에 공감하는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층의 지지를 받아 5.8%에 이르는 득표율을 보여주었고, 이러한 대선에서의 지지를 바탕으로 18대 총선에서도 버겁다고 평가받던 은평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를 무너뜨리며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대선이 끝나고 나서의 그와 그의 지지자들이 창당했던 '창조한국당'의 지도부는 '대선비용'을 둘러싸고 문국현과의 갈등을 빚어내며 상당수의 인물들이 이탈해 나갔다. 대선을 위한 이합집산의 '정당'으로 비춰질 수 있는 일이었고 문국현 대표의 리더쉽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지만 그래도 일단 그의 지지자들은 '문국현을 믿어보자'는 약간은 무대책적인 신뢰를 갖고 있었다.

이후 곧바로 이어 치뤄진 18대 총선 결과 '창조한국당'은 고작 3석에 그쳤으며 그마저도 비례대표의 '비리 공천'이라는 추문에 문국현 자신까지 휩싸이며 그가 기존에 내걸었던 정당 및 정치인과의 차별성은 거의 희석되다시피 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정당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인 2석을 간신히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내우외환의 결과 때문이었을까. 총선 결과에 대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던 이회창 총재의 자유선진당과 덜컥 손을 잡아버렸다. 대선 때 그렇게 후보 통합을 하자던 통합신당과는 기존 정치 결과에 대한 '석고대죄'없이는 '단일화'는 절대 있을 수 없다고 강변하던 그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책연대를 통한 원내 교섭단체 구성이라는 제 딴에는 그럴싸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이유를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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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씨와 그가 이끄는 '자유선진당'은 예전의 '대선후보 정동영'과 '통합신당'보다 어떤 요구 조건 없이도 훨씬 더 자신의 파트너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렇게 그는 그동안 자신을 따라다니던 '진보'라는 이미지를 과감히 내던져버렸던 것이다. 어쩌면 그의 실체가 정치적 위기를 겪으면서 드러나게될 필연적인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그를 지지했던 유권자들, 그리고 이번 18대 총선에서 다시 한번 그에게 표를 행사했던 지역 유권자들은 현재와 같은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던 것은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탄생과 취임 이후 두어달간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시멘트 지지율'을 바탕으로 150석 이상을 거머쥔 한나라당을 필두로, 대한민국의 지도부가 극도로 우측으로 경도되어가는 작금의 현실에서 그야말로 진보 및 개혁 진영의 새로운 기수로서 국민의 뜻과 열망과 목소리를 그대로 대변해 줄 수 있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너무 쉽게 자신을 지지했던 국민들을 저버렸다. 이는 그의 진실된 모습이 드러난 것이거나 또는 그가 결국 정치를 모른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치를 위해 필요한 정치적 신념과 이념이 그에게는 애초부터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대선 기간 동안 비판했던 구태의연한 기존의 정치인들과 그 역시 다를바가 없다는 것을 그 스스로가 증명해버렸다.

이번 양당간의 합의를 통해 그가 이끄는 '창조한국당'의 이념적 정체성은 사실상 모호해져버렸으며, 이제 당이라고 부르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와 그의 정당이 내세운 이념과 정책을 보고 지지했던 지지자들 역시 자신들의 뜻과 전혀 반대로 행동하고 있는 문국현의 모습을 보며 급속도로 이탈해갈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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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탄핵을 빌미로 과반의석을 확보하며 여당 프리미엄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기반 정당의 타파라는 한국 정치사상 유래가 없던 초당파적인 '대연정'을 제의했음에도 기존 지지자들의 무수한 이탈을 초래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다소 성급했던 '정치적 결단'에 비하면 이번 문국현의 '결단'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할 뿐이다.

무릇 자신이 정치인이라면 스스로가 무엇을 위해 어떠한 신념을 바탕으로 자신이 정치라는 과정을 통해 이상향을 창조해낼 것인지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지녀야 할 것이다. 그러한 비전에 동의하는 지지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여러 다른 생각들을 지닌 또 다른 정치인들과 때로는 대결구도를 형성하며 때로는 설득하고 합류시켜 정당한 철차를 통해 다수의 국민들의 지지와 동의를 받아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국현의 이번 행보는 자신이 내세웠던 정치적 신념을 저버렸고 대선때 그를 지지했던 130만여명의 유권자와 이번에 '여당 프리미엄'을 포기하면서까지 이재오 대신 그를 국회에 보내준 지역구민과 지지자들을 모두 기만한 꼴이 되었다.

정치적 기반이 없는 문국현에게 있어 가장 큰 자산은 그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그를 지지하는 지지층인데, 이번 결정으로 가장 중요한 그 두가지 모두를 잃어버리게 되었으니 그 역시 사실상 '진보적' 정치인으로서의 미래를 스스로 걷어찬 셈이 됐다고 볼 수 있겠다. (반면 보수 정치계에서 정치 생명을 계속 연장할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는 일이겠지만.)

앞으로 어떠한 정치적 결과가 있을 지라도 그것은 결국 문국현 스스로의 '자업자득'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신념과 신뢰를 저버린치 이미 실패한 정치인이 되어가고 있는 그를 지난 대선과 이번 총선에서 지지했던 한 사람의 지지자로서 '그의 변절'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더 늦기 전에 그의 실체를 알게 되어 후련한 점도 있다.

이러한 일견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와 정치에 분포된 '진보 개혁적 정치 세력'은 근본적인 고민을 안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단지 인물에만 기대서는 그들이 요구하는 추진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이제는 '한 두 명의 진보적 성향의 인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진보와 개혁을 위한 사회 및 정치 발전'의 기치 아래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그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적 구조의 형성에 착수해야 할 시기를 알려주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길 희망한다.

여담이지만 그가 자신의 당선에 대한 당위성으로 내세웠던 홍보 문구였던 아일랜드의 메리 메컬리스 대통령의 성공담 중에서 이런 문구가 있었다. "그녀는 기존의 부패한 정치세력과 완전 단절하고 아일랜드 경제성장을 위해 박차를 가합니다. 저는 바로 문국현이 한국의 매컬리스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부패한 정치권과 아무런 연결점도 없기에 오히려 부패를 청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회창과 손잡은 이번 선택으로 한국의 매컬리스가 될 기회를 스스로 저버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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