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볍게 안부나 물어보려 친구녀석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 무려 4시간이나 논쟁으로 이어질 줄은 통화버튼을 누르던 그 시점에서는 미처 알지 못하였으리라.

역사. 즉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쓰여지는 책들은 일단 논문 형식이든 소설 등의 문학 형식이든 실제로 있었고 기록으로 남겨진 팩트 그 자체를 가지고 자신이 독자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에 맞게 해석하기 마련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실의 왜곡 여부이다.

논문 형식의 구조를 취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감성을 배제하고 이성적이고도 합리적인 논리 구조를 따라 필자의 의견을 제시하기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도출해 내는 결론에 대해 동의를 하는가의 여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아무리 팩트와 팩트 사이를 논리적으로 전개한다고 하더라도 그 방향이 독자와 맞지 않는 방향이라면 공감을 하는가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논문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이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을진대, 하물며 소설적 형식을 취하는 역사 문학은 더 말해 무엇하랴. 소설류는 논문보다도 일반적으로 개연성이라는 측면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성보다는 감성으로 접근하며, 기록에 남겨진 역사적 사실 이외에도 온갖 검증되지 않는 2차적 사료들, 즉 일반적 통설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서, 그리고 전설이나 설화, 구전 또는 구술로 남겨진 것들도 작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다지 큰 거부감 없이 취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작품들은 작가가 갖고있는 주관적인 감성과 의도를 지닌 평가도 상당히 진하게 담겨진다.

하지만 문학이기 때문에 팩트와 팩트 사이의 허구적 스토리를 재구성하거나 다소간의 논리적 비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하나의 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점에 대한 평가 역시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천차만별의 스펙트럼을 지닌 독자들은 그러한 팩트의 뼈대에 픽션의 살을 덧붙여 완성된 하나의 작품에 대해 사실성이나 논리적 개연성이 떨어지는 측면에 대해 비판을 가할 수도 있으며 팩트를 기반으로 전개한 작가의 문학적 구성에 대해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나름대로의 작가의 의도에 공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적어도 최인호의 유림에 있어서는 후자의 입장에 가깝다. 한때나마 역사를 전공했던 한 사람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떠한 사실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 해석은 그저 독자로서 취사 선택을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모든 서적이 객관적일 수는 없다. 서적이 지닌 특성상 이미 그 작가 스스로가 자신만의 관점과 신념을 지닌 주관적인 한명의 개인이기 때문이다.

다만 독자가 그러한 제반 사실에 대해 사전에 인지할 필요는 있다. 작가의 표현이나 전개 방식도 마찬가지다. 개개인이 보기에 그럴듯 하다고 인식하면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면 그렇게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그러한 묘사를 통해 무엇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묘사를 하고 표현을 하며 해석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4시간의 논쟁을 벌였던 친구에게는 그것이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작가야 어떤 의도를 지니고 묘사를 하고 해석을 했든 그보다도 친구 자신이 생각하는 관점에서는 논리적 개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게끔 충분히 합리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가거나 차라리 그러지 못한다면 굳이 주관적인 해석을 덧붙일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서 친구와 나는 4시간을 투자했음에도 그다지 접점은 찾지 못하고 결국 서로의 견해차를 확인하는 수준에서 대강 논쟁을 마무리지었다. 서로가 상대방을 설득하려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들만의 논리와 판단을 바탕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중간지점을 허용하지는 않았던 듯 싶다. 다만 같은 표현과 설명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차이는 이렇듯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 한번 더 선명하게 깨달았다고나 할까.

적잖은 시간 동안 의견을 주고받으며 친구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앞으로 책을 보게 되면 그가 강조하는 논리적 개연성을 좀 더 스스로 의식을 하게되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친구가 갖고 있는 견해의 옳고 그름과는 달리 그가 책을 보는 하나의 방법이며 친구의 강조처럼 그렇게 하면 분명 객관적이고도 비판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될 가능성은 높아지니 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한권의 서적, 또는 여러권으로 구성된 시리즈가 총체적으로 작가만의 표현 방식과 전개 내용을 통해 (설령 국지적으로 오류나 헛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독자에게 어떠한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인지, 그리고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우선시하는 것은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서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라이트 비판  (2) 2009.02.19
아웃사이더 콤플렉스  (0) 2008.09.09
박정희와 친일파의 유령들  (0) 2007.05.12
本삼국지  (4) 2007.05.08
미 정부 비밀해제 문건으로 본 미국의 실체  (0) 2007.04.0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