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인적으로 노무현 前 대통령을 좋아했다. 노사모의 구성원만큼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난 그를 좋아했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어제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주체하기가 힘들었음을 보면 말이다. 운 좋게 지난 참여정부에 그가 퇴임하는 그 전날까지 반 년 가까이 대통령 비서실 기록관리비서관실에서 잠시나마 근무한 것은, 그를 직접 볼 수 있던 것은 아니지만 아주 미약하나마 그와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에게는 참으로 뿌듯하게 여겨졌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느즈막한 오전에 티비 속보로 급작스럽게 전해들은 그의 투신으로 인한 서거 소식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던 현실에 대해 끝내 타협하지 않는 '노무현다운 선택'이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국민경선을 치루기 전까지는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정치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민주당 국민경선을 거치는 중 광주에서 1위를 차지하며 전국구 정치인으로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한 이런저런 책과 자료들을 찾아보게 되었고, 그의 정치적 소신과 신념에 대해 신선함과 더불어 상당한 호감을 갖게 되었던 듯 싶다. 물론 그 과정에서의 도전으로 점철된 드라마틱한 정치 역정도 매력을 느끼는 주요한 요소가 되었을 듯도 싶다.

 

의경으로 복무하던 시절에 처음으로 행사한 투표권을 미련없이 그에게 던졌으며, 투표가 마감되고 개표가 시작되면서 자정 무렵 방범순찰을 위해 탄 순찰차에서 접전 끝에 당선이 확실시 된다는 방송을 듣고, 옆에 있는 젊은 순경과 함께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이 난다. 그라면, 그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신념이라면 해방 이후 지금까지 모순이 누적되어 온 한국 정치와 사회 전반의 환부를 도려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복학 후 1년 정도 지난 즈음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 친구가 먼저 수화기 너머로 흥분한 채 전해 주었던 탄핵 소식을 듣고, 분노했었다. 그리고 한 달여 뒤에 있는 총선과 지자체 선거에서 모두 열린우리당에 투표를 했다. 할 일이 많은 그가 여기서 기득권의 반발에 의해 무너지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정치판에서 밀리고 있는 그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이기도 했다. 차라리 그 막강하다는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해서 일거에 다 쓸어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들 정도였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라고 그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겠는가. 그러나 노무현은 노무현이었다.

 

그렇게 정적은 물론이고 지지세력까지도 등을 돌리는 상황 속에서 비판은 물론 가당찮은 비난까지 받아가면서도, 자신의 소신대로 대통령 직위를 수행했다. 물론 그 소신을 항상 관철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노무현에게 정치인으로써 부족한 것은 유연한 정치술수가 아니냐는 지적도 했다. 하지만 노무현 역시 기존의 숱한 정치인들처럼 정치에 노회함을 발휘하고 권모술수에 능했다면 오늘날 이 비극을 마주하고 있는 순간까지의 우리가 알고 있는 노무현이 있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노무현은 노무현답기 때문에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노무현다움 때문이었을까. 그는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온 지 고작 1년 반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투신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 역시 그에게 언제나 지지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재임 중에 있었던 한.FTA는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비판 일색으로 인해, 왜 그랬는지 이해하기 힘들어서 당시 봇물 터지듯이 출간되는 책들을 갖다 놓고 정부의 설명과 비교하기도 했다. 정말 진보 진영의 주장처럼 노무현은 좌측 깜빡이를 켜고서 우측으로 가버린 것일까. 의심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행하는 집무는 단지 어느 한 정파의 주장이나 견해만을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성격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국가의 이익과 국민 다수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을 선택하고 추진해야 함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하나의 당파성에 매몰되는 것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적과 아군으로 단순하게 구분짓던 이데올로기가 횡행하던 시대는 90년대에 사실상 끝났다.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다극화, 다원화 된 사회에서 개별 사안별로 다양한 집단들의 이해 관계를 따져가며 처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느 한 쪽에 100%의 만족을 줄 수가 없다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탈권위주의적인 행보는 재임 기간 동안 한국 사회가 지닌 모든 부정적인 상황에 대해, 과정은 도외시한채 '이게 다 노무현 탓이다.'라는 말 한마디로 쉽게대통령 1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조롱하는 상황들을 초래했다. 국민이 역대 가장 훌륭한 대통령 중 한명으로 꼽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면, 그가 재임 중에 겪었던 그러한 상황을 용납할 수 있었을까.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약해진 대통령직의 권력과 권한이라지만, 결심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그 정도는 틀어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건 굳이 과거까지 가지 않고도 당장 지금의 이명박 정부가 보여주는 모습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주권자인 국민이 통치자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던 것을 생각한다면,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정치적 신념의 크기는 이미 일반적으로 권력에 경도되어 있는 흔해빠진 정치인의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임은 분명하다.

 

그의 임기 5년은 고달프기 짝이 없었다. 극소수로 전락해버린 지지자들을 제외하면 진보니 보수니 가릴 것 없이 그는 공격당하기만 했다. 과거의 대통령직이 지니고 있던 초법적 권력을 내려놓고맞서 싸우자니 그 힘은 터무니없이 부족해 보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과거의 어두운 현대사를 상징하던 힘을 끌어다 쓰지 않고 임기를 마쳤다. 이제는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100% 완벽하게 수행하고 국민 개개인 모두에게 동일한 만족감을 줄 수는 없다. 그것이 명백한 현실임에도 다수의 국민들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부차적인지 구별할 줄을 몰랐다. 노무현이 우리에게 대통령으로써 무엇을 해주었는지는 비로소 정부가 교체되고 나서야 알았을만큼 각자의 욕망에 매몰되어 갔다.

 

그리고 그렇게 국민 개개인이 갈구하던 욕망의 집합체로 잉태되어 새롭게 등장한 권력은, 그가 도입했던 법과 제도들을 하나씩 무너뜨리기 시작했으며, 종국에는 자연인으로 돌아간 그마저도 가만히 놔두지 않고 절벽 끝으로 내몰았다. 우리는 또 과거와 같이 너무나도 편하게 현 대통령과 정부를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지만, 과연 지금 정부가 지닌 그 권력은 누가 위임하였는가? 지난 대선에 자신의 선택을 되돌아 보며 차분히 생각해 보길 바란다.

 

퇴임 직후부터 시작되어 13개월간의 당사자와 가족, 친인척과 측근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수사기관 등이 동원되어 조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뇌물을 받았다는 어떠한 명백한 법적 사실이나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지저분한 추정과 3류 소설같은 의혹들을 언론에 흘렸으며, 참여정부 말기에 추진했던 취재 선진화 지원방안에 대해 기자실 통폐합이라며 진보.보수 언론 가릴 것 없이 그가 마치 독재자인마냥 성토하던 언론권력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 날뛰며 하루가 멀다하고 기사로 포장된 배설물을 쏟아내어 그에게 인격적 살인을 가하고, 뇌물수수를 한 부패한 정치인으로써 낙인을 찍어버렸다. 그리고 다수의 국민들은 그러한 언론 다수의 추측성 보도만으로 이를 기정사실화 해버렸다.

 

한 인간으로서의 노무현은 완벽하게 고립되었고 벼랑 끝으로 내밀리고 있었다. 퇴임한 대통령으로서 정계의 큰 어른은 고사하고 평범한 소시민으로서의 노무현의 삶마저도 유지될 수가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그는 결국 그 마지막을 비극으로. 한편으로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오랜 기간 보아왔던 노무현다움으로 마무리했다. 그는 살아서 죽고 죽어서 사는 법을 진정으로 알고 있었고, 그것을 실제로 행하는 어찌보면 두려울 정도의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일생을 관통하고 있는 정의감과 도덕성에 대한 강렬하리만큼의 신념은 그를 대통령직의 도전까지 성공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나, 반대로 조그마한 흠집에도 쉽게 깨질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닌 것으로, 한국 정치의 평균적인 수준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던만큼, 정치적 난도질에 의해 쉽게 손상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그를 보호해줄 수 있는 것은 지난 대선 국민의 선택이었지만, 국민은 그를 버렸다. 냉혹하게.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노무현이 대통령으로서 추진한 개혁 또는 혁신과 국민 개개인 다수가 추구하는 극히 현실적인 욕망의 방향이 서로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비극적인 투신은 현 정부와 언론 등 기득권에 의한 정치적 타살이며, 그 정부를 탄생시키고 그들의 가당찮은 주장과 졸렬한 행태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국민 다수에 의한 것이었음을. 그의 초상화를 보며 헌화하고 눈물을 흘리는 그들은 지금은 깨닫고 있을까?

있을 때는 소중한지를 모른다. 사라질 때 비로소 그 소중함을 안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변하지 않는 진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의 어리석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 국민의 정치 수준은 그러한 그에게 5년 시한부인 대통령의 권력을 주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이를 반납하고 자연인으로 되돌아간 그를 끝까지 믿고 지켜주지는 못하는 수준에 그쳤다. 정치적 신념이 무엇이고 살아온 발자취가 어찌 되었든 상관없이 그저 당장의 자신의 금전적 이해관계와 맞는 정치인을 선호하는데 급급했다. 부패했든, 범법자든 그런 것 따위는 그들에게 아무래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땅값, 집값으로 대변되는 욕망에 대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올려줄 수 있을 정도의 대통령. 딱 그 정도였다.

 

그래서 그의 서거 소식은 더욱 가슴 아프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헌정 사상 가장 서민적이면서도 품위가 공존하는 멋진 전직 대통령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끝끝내 지켜줄 수가 없었던 이 한국 정치의 후진성과 국민의 정치 의식에 대한 수준낮음은 역겨울 정도다. 뒤늦은 국민들의 추모행렬도 이를 변명할 수는 없다.

 

그의 서거가 정말 슬프다면 그래서 이 후진적인 정치 수준과 환경이 싫다면, 그가 남기고 간 마지막 교훈은 단 하나다.

 

정치가 아무리 혐오스러워도 관심을 갖고, 자신에게 부여된 정치 권력인 선거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것이다. 노무현은 지난 촛불 집회와 관련하여 이명박 정부에 대한 퇴진 요구는 지나치다고 언급했던 적이 있다. 쿠데타나 혁명을 제외한다면 직접 정치판에 뛰어들지 않는 이상 현행 법과 제도 내에서는 11표제의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이, 소시민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정치 개입이자 변화에 대한 시발점일 수 밖에 없다.

 

국민 개개인이 위임한 권력의 집합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는다면, 그래서 다시는 오늘날과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면, 자신의 조그마한 사익보다도 국민과 국가 전체에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정치적 신념과 그러한 정치 역경을 걸어온 정치인에게 자신의 조그마한 권력을 위임할 수 있다면.

 

평생을 독재정권의 퇴진과 민주주의의 부활, 지역감정에 기반한 낡은 정치구조의 타파, 수도권 대신 지역의 균형발전, 대통령 중심이 아닌 정부와 여당의 존중, 법과 제도에 기반한 행정의 합리적 선진화 등을 추구했던 그가 더 이상 여한이 남지 않고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지 않을까.

 

삼가 노무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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