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근간은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아래로부터의 권력위임과 위로부터의 삼권분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여기에서의 민주는 민주주의의 민주일터이다. 그렇다면 과연 2009년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일까?

이미 작년 민주적이던 '촛불집회'에 대한 공권력의 억압과정을 거치며 87년 이래 지속적으로 확장되어가던 민주주의에 대한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는 새해 벽두부터 청와대의 하부조직과도 다름없던 다수 여당의 날치기와도 다름없는 일방적인 법안 상정 등과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입법부인 국회의 독립성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이어야 할 사법부도 그 독립성에 대한 강력한 의구심이 들만한 일이 터져나왔으니 바로 '신영철 대법관의 e-mail' 파문일 것이다.

법관 개개인은 사법부의 주체로서 헌법과 양심에 따라 합리적이고도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야 하는 것은 민주주의 삼권분립의 한 축을 이루는 사법부의 중요한 권한이자 의무이다. 그렇기에 촛불집회를 형사 단독 13부에만 일괄 배정하는 것에 대해 소장판사들은 의문과 이의를 제기했으며, 또한 판결과정에 있어서 '촛불집회'로 인한 집시법과 헌법의 충돌이 과연 위법인지에 대해 판단을 구하기 위해 '헌재의 위헌제청'을 수용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과정들은 지극히 상식적인 사법부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부 판사들의 합리적이고도 합법적인 결정이 불편했던 것일까. 판사 개개인의 자율성이 최대한 확보되어야 할 사법부 역시 조직의 특성상 있을 수 밖에 없는 위계질서의 구조를 악용하여, 신영철 대법관이 청와대와 검찰의 입장을 대변하는 식의 '신속한 판결을 종용'하는 뉘앙스가 담긴 e-mail을 사건 담당 판사들에게 보낸 점은, 어떠한 이유와 변명을 한다고 하더라도 당사자들에게 있어서는 '무언의 압력'이자 분명히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하는 행위임은 자명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자 신영철 대법관은 대법원 다수의 의견이자 법질서 확립을 위한 행위였다고 강변하면서 사퇴는 불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 질서 확립?' 어디선가. 그리고 누군가 아주 많이 하던 이야기 아닌가? 이상하게도 법 질서를 그렇게도 확립하자던 자들은 법과 상식의 테두리가 벗어난 방법을 동원하니 그들의 '법 질서'는 과연 누구를 또 무엇을 위함이던가.

민주주의의 중요한 한 축이자 최후에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가려 국민의 권리와 정의를 수호해야 할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한 근간을 위로부터 뒤흔든 이번 사건은, 역시 그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해야 할 것이다. 신영철 대법관은 물론 이영훈 대법원장의 연루 의혹과 나아가 대법원을 넘어선 정치적 배경이 있는지 등에 대한 관련된 여러가지 의문스러운 사안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밝혀야 할 것은 당연하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사법부는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훼손될 때마다 이른바 '사법파동'을 일으켜 그 소중한 가치들을 지속적으로 지켜왔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래 정치적 사안에 대해 일방적으로 행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듯한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 거듭되면서 '독립성'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있는 이 때에, 이번 사안은 스스로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자성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부디 국민 앞에 한점 부끄러움도 없는 그래서 다시금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로써, 신뢰하고 신뢰받을 수 있는 사법기구가 될 수 있도록 뼈를 깎는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덧-

신영철 대법관의 e-mail 파문을 보면서 최근에 판결되었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 : KBS 신임 사장 결의에 대한 효력 정지 신청 기각, 조중동 광고 불매 운동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미네르바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등을 보면 과연 청와대가 '법 질서 확립'을 기세등등하게 '운운'할만한 연유가 다 있었구나라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과문'  (0) 2009.04.08
노무현 용인술 덕에 MB가 편하네?  (0) 2009.03.19
'정치'에 대한 단상  (0) 2009.02.12
신해철과 입시학원 광고 논란  (0) 2009.02.12
민주노총의 성폭력 사건  (0) 2009.02.0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