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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하순의 어느날. 국가기록원 홍보 담당자에게 메일 한통을 받았다. 위에 포스터도 걸어놓았지만 대한민국 '건국 60 주년'을 기념하는 국가기록 특별전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최한다면서, 학과 차원에서의 홍보를 대신 부탁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점 하나가 대한민국의 '건국 60 주년'이라는 용어였다. 대한민국의 광복이 아닌 건국이라. 왜 하필 '건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을까. 거기에 60주년이라면 이를 거슬러 올라가면 1948년 당시 이승만을 주축으로 하는 남한 단독 정부를 수립한 때였다.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건국의 사전적 용어는 '나라가 세워짐. 또는 나라를 새로 세움'으로 정의된다. 사실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라는 말 자체는 아주 틀렸다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대한민국이 '언제 건국이 되었는가.'라는 문제로 들어가게 되면 이야기가 크게 달라지게 된다. 현 정부가 홍보하고 있는 것과 같이 '건국 60주년'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광복 이후 남한 단독으로 수립된 이승만 정부를 적통으로 하겠다는 의미가 담긴 것일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이는 현재까지 수차례 개정된 대한민국 헌법에서도 부동의 1번 조항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처음으로 내세우며, 1919년 상해에서 백범 김구 선생 등 독립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하여 최초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임시정부를 구축하였던 역사적 정통성을 부인하는 뜻이 (의도하였든, 그러지 않았든) 함축적으로 포함되게 되는 것이다. 즉 대한민국의 '건국'이라는 용어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제 강점기 시절에 수립되어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으로 선포하기까지 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는 연결고리가 끊어지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역사적으로도 새로운 왕조가 들어섰을 때, '건국'이라는 용어는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왕건의 고려도 그러했고, 이성계의 조선도 그러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왕조를 개창함에 있어서 도와준 이들에 대해 '개국공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 '건국공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이는 그들이 '건국'과 '개국'에 대한 용어의 개념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중세시대의 서막을 알린 고려는 삼국시대의 고(구)려<이미 장수왕 시절 勾를 빼고 국명을 '고려'로 변경하였다는 학설도 제기되고 있다.>를 잇는다는 뜻으로 국가명을 고려라고 하였으며, 중세의 모순을 해결하며 근세로 나아갔던 이성계의 조선도 국명을 단군 조선에서 다시 가져와 사용하게 되었고, 후에 학계에서 단군의 조선과 이성계의 조선을 구별하기 위해 단군 조선에 '古'를 붙여 고조선으로 명칭하는 것은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만한 역사적 진실이기도 하다.

흔히 민주주의 시대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절대적 권력을 갖고 있던 왕조 시대의 위정자들 역사관이 이러했거늘, 어찌 작금의 현실에 존재하는 위정자들이란 이렇게도 역사에 무지하고 역사에 대한 의식이 없는 것일까. 

최근의 언론보도를 통해 보면 이렇게 중요한 의미가 담긴 '광복절'을 뒷전으로 밀치고, 대한민국이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1919년의 임시정부 수립일도 아니고,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이나 역사적 의의가 약하며 남북 분단의 시발점이 되었던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일을 '건국절'이라는 낯선 용어까지 사용하면서 기를 쓰고 국가기념일까지 만들려고 추진하는 세력의 뒷편엔 아니나 다를까 '보수'를 자처하는 '뉴라이트'단체들이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이명박 대통령의 정부가 앞장서서 홍보도우미를 자처하고 있는 것이고.

반면 지난 참여정부 시기에 대통령 소속으로 활동하였던 각종 과거사 위원회는 이러한 잘못된 역사의 흐름을 규명하고 바로잡아보자는 취지에서 추진되었지만, 그 과정에서도 온갖 정치적 공세와 훼방을 당하곤 하였다. 비록 소기의 목적에는 100%  달성하지 못하였을지언정 5년의 비교적 짧은 시간과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의 성과들을 내고 있다. 그러나 '과거를 잊자'던 이명박 대통령은 이들을 내년까지 대부분 정리하겠다고 이미 밝힌 상태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의 근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그 개념을 어디까지 한정지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부나 일부 단체의 정치적인 색깔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역사학계의 치밀한 연구와 냉철한 이론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역사적 의미'가 담긴 '역사용어'로써 '규정'되어진 후 사용되어야 할 부분인 것이다. 그런데도 현실은 그러한 고민이 없이 너무나도 단순한 논리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식 홍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부의 하는 짓들이란 하나같이 이렇게 답답하고 한심스러운 것들 뿐이다. 자신들의 과오와 치부를 덮기 위해 당연한 역사적 진실의 규명은 물론 정통성까지 훼손하는 그네들의 탐욕과 망상을 보면, 참으로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을 지적하기 이전에 대한민국은 이러한 교묘한 방식을 통해 스스로의 역사를 왜곡하는 것에 대해 크게 반성하고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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