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몇년 전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크게 흥행했던 조폭영화였던 '친구'에서 장동건이 맡았던 '동수'에게서 이런 명대사가 나온다. '고마해라. 많이 묵었다 아이가...' 이 대사는 당시 큰 유행을 불러 일으켰으며 지금도 심심찮게 사용되곤 한다.

지난 6월 중순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에 의해 '대통령 기록물'을 '유출'한 것처럼 되어버린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한달이 넘도록 현 청와대와 '기록물'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을 겪으면서 이같은 이야기를 내뱉을만도 할 법하다. 아니 이미 그러한 심경을 담은 편지를 이명박 대통령 앞으로 발송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당한 권리와 법적 유권해석을 바탕으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열람권 보장'이라는 것이 시스템으로 구현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자신이 직접 생산했던 '기록물'들을, 결국 갖은 언론 플레이와 권력을 앞세운 압력을 견디다 못해 성남의 대통령 기록관에 반납하고야 말았다.

현 청와대가 그렇게 주장했던 '무단반출'한 기록물들을 제자리로 되돌려줬으니 문제는 끝난 것이 아닌가?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불만이고 왜 그렇게 꼬여있는지 몰라도, 현 청와대는 단지 '사본의 반납'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나보다. 이젠 아예 그 기록물들을 볼 수 있도록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업무 및 기록관리시스템이었던 'e-지원'을 구축한 서버까지 내놓란다.

이것이야 말로 적반하장격이자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었더니 보따리까지 내놔라하는 격이 아니고 무엇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본 기록물 소유'에 대한 현 청와대에서 주장하는 '불법행위'이며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을러대고 있는 모습은 -참여정부 말기에 이와 관련된 현행법에 대한 법제처의 법률적 검토와 담당기관이었던 국가기록원의 '한시적'이라는 양해까지 얻고 '사본'을 소유할 수 있던 과정을 보았을 때- 그저 동네 협잡꾼과도 같이 우위에 있는 권력을 바탕으로 한 협박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들은 사본을 돌려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자비를 들여 구축한 서버까지 되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현재까지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부분이기도 한데, 데일리 서프라이즉 취재기사에 의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은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서버'까지도 '사본 기록물'과 함께 모두 반납한 상태라고 한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이미 자신들의 주장대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어냈다. 이미 반납한 것인데도 계속 '반납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되돌려준 하드를 과연 확인하고 나서 주장하는 것인가? 아니면 '모르쇠'식의 일방적인 정치 공세인가? 그도 아니면 '로그인 사태'에 버금가는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 컴맹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것은 아닌가?

여기서 정말 코믹한 점이 무엇이냐 하면 현 청와대가 반납을 요구하고 있는 'e-지원'시스템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아이디를 제공하였으며, e-지원 개발에 참여한 비서진을 비롯해 5명의 명의로 국유특허(명칭은 '통합 업무관리시스템 및 이의 운영방법'이며, 직무상 발명을 촉진하기 위한 공무원 직무발명제도에 따라 진행된 국유특허의 모델케이스였음)를 받은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국제특허 출원까지 되어 있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당시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은 "경제적 목적이 아닌 공무원직무 보상에 관한 규정에 따라 진행된 국유특허라서 앞으로 이를 필요로 하는 기관이나 개인, 단체가 무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까지 했다.

즉, 이러한 e-지원의 성격에 비춰봤을 때, 사비로 구축한 독립 서버까지 모두 내놓으란 이야기는 IT에 대해서 모르는 무식함에서 비롯되었거나, 아니면 법적으로 보장된 전직 대통령 열람권을 깡그리 무시하는 처사이거나, 그도 아니면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기록을 돌려받는 과정의 이슈화를 통해 무엇인가 정치적 농간을 부려보려고 하는 수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미 취임 직후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는 노무현 대통령의 작품이기도 한 e-知園 시스템을 위민(爲民)시스템으로 개명하며 전 정부의 흔적을 지워버렸으며, 그와 동시에 e-지원 시스템의 핵심 기능이기도 하였던 '문서관리시스템'(이 기능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은 비서진들의 업무 보고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비롯해 칭찬과 질책 등 일일히 코멘트를 달았으며, 이는 그대로 전산화되어 '대통령 기록물'에 고스란히 남아있게 된다.)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록관리 기능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직접 만나 보고를 듣는 '독대'와 같은 취향 탓인지 본래의 기능에서 사실상 50%가 넘게 정지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한다.

이처럼 국가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위해 도입했던 기록의 생산 및 관리 시스템인 'e-지원' 시스템을 개발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대통령기록물 법'과 이에 근거한 이관 프로세스는 참여정부 초반부터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하여 관계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구축하였던 것으로, 그 어느 국가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민주적이며 최선진적인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발전적인 방향의 개선은 커녕 오히려 시스템은 물론이고 법까지 그 모든 것들이 고작 구태의연한 '정쟁'의 소재로 사용되면서, 이렇게나 급속도로 무너지게 될 줄을 그 어느 누가 예측하였을까.

비록 기록물 관리에 관한 학문적 이론은 아직까지는 서구 유럽과 호주 및 북미에 비해 뒤쳐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자정부라는 테마에 걸맞는 전자적 기록관리시스템에 있어서는 그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아깝지 않을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e-지원과 같은 시스템을 통해 업무영역에 있어 전 과정을 전자기록화 함으로써 '투명성'과 '책임성'을 담보하여 한층 더 성숙된 정치와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안전장치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전자적 기록관리의 장점들을 계속 살려나가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생산된 기록들은 일정시간의 법률적 보존 기간을 거쳐 선별적인 공개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모든 기록에 담겨진 '정보'들을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되돌려 준다는 점에서 21세기 민주주의 국가가 갖춰야 할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작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대통령 기록물을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과 법률 그리고 그를 존중하는 문화까지 모두 뜯어고쳐내는 이명박 대통령과 현 청와대가 옛 시절로 시계를 부단히 되돌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기록관리학을 공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써, 그리고 참여정부 시절 말기 대통령 비서실에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기록물의 이관 작업에 5개월 가량 참여하였던 필자의 경험과 기억으로는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은 참으로 기가 막히며 한심스러울 따름일 뿐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