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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참여정부 시절 생산된 자료의 유출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자료'가 아니라 '기록'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맞다. 청와대를 비롯한 공공기관과 영역에서 업무 수행과 관련하여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해 말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재임 중에 생산했던 기록들을 고스란히 남겨 그 중 장기 보존을 할만한 가치를 지닌 기록들의 진본 825만건을 국가기록원 산하 대통령 기록관으로  이관하는 작업을 했다.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도 기존의 기록물관리법에 의해 '기록'을 이관하였지만, 그 질적 및 양적 측면에서는 참여정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사실 이 문제는 언론에서 연일 보도하는 것만큼 심각한 사안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진 사본에 대한 문제는 담당부서인 국가기록원과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한 가지 문제만을 해결하면 자연스럽게 풀릴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 현 정부와 청와대가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국가기록물의 무단반출 여부'이다. 일단 이것에 대한 관련 법령부터 살펴보는 것이 우선적일 것이다.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 : http://www.lawnb.com/lawinfo/law/info_law_searchview.asp?ljo=l&lawid=00686650)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란.

2007년 4월 27일 제정된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은 제정 목적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기존까지의 정권 교체기마다 이뤄지는 무분별한 '기록'의 파기를 방지하고, 국가적 및 역사적 가치가 높은 대통령 기록물들을 보호 및 보존하고자 도입된 법률이다. 그리고 이는 향후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시기에 적극적 공개를 하여, 국민의 활용과 더불어 국정 운영에 대한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자 함인 것이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을 위시하여 참여정부 기간 내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던 '기록관리정책'과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는 것으로, 한국의 공공기관 기록관리의 성숙도를 알려주는 척도의 정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과연 그 역대 그 어느 정부에서 이렇게 자신들의 정책 집행 과정을 소상히 기록하여 남기고자 하였던가. 과거 정권 획득을 위한 정치를 했던 그네들로써는 훗날 자신의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정책 집행 과정에 대한 '기록'은 아예 생산하지 않거나, 남겼다고 하더라도 종국에는 무조건적으로 파기해버려 정권에 대한 증거를 인멸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반복되었던 악순환의 고리를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끊어내기 시작했다. 1999년 2월 최초의 기록물관리법인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는 것으로 '기록관리'에 대한 신호탄을 쏘아 올렸으며, 참여정부가 들어선 2004년에는 학계의 꾸준한 관심과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로 한층 더 범위가 넓어지고 보완된 법률로 개정이 되었다. 더불어 대통령 비서실과 국가기록원 그리고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산하 국가기록관리혁신위원회를 설치하여, 기록관리혁신에 대한 4대 목표와 9개의 아젠다를 설정하여 임기 내내 강력하게 추진하였던 정부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였다.

그 결과물로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비점을 보완하여 법령이 개정되었으며, 노무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청와대 업무 및 기록관리시스템인 e-지원을 개발하였고, 마침내 2007년 대통령 기록물을 관리할 수 있는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또한 이를 이관받아 관리할 수 있는 '대통령 기록관'이 성남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논란의 핵심. '국가기록물의 무단반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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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임기 중에 이러한 행정부를 중심으로 한 국가적 차원의 '기록관리혁신정책'을 주도했던 노무현 대통령이건만, 정작 퇴임 후에는 현 정부에 의해 '국가기록물의 무단반출'이라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처럼 '중앙일보'를 비롯해 일부 수구 언론들에 의해 연일 보도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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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이 문제에 대해 중심적으로 풀어가야 할 행정자치부 산하 국가기록원의 정진철 원장은 이번 정부 출범 초인 3월에 새로 부임된 인물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료 회수'라고 언급함으로써, 적어도 지난 참여정부 시절 말기에 진행된 대통령 기록물의 성격과 이관 상황에 대해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비춰졌다.

법률에도 규정되어 있는 내용이지만, 지난 참여정부에서 생산된 대통령 관련 기록물들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지정', '비밀' 등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이는 각각의 종류에 따라 15년에서 최대 30년까지 열람 및 공개가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이 기록들의 열람에 대해서는 현 대통령인 이명박 대통령도 볼 수 없으며, 오직 16대 대통령 기록물의 생산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업무와 관련하여 대통령 기록관장에게 허가받은 대통령 기록관의 구성원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문제와 예산 배정 문제에 부딪쳐 재임 기간내에 결국 전직 대통령의 열람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기록물법'에 보장된 전직 대통령의 열람권이 보장되는 시기까지 한시적으로 참여정부 시설 생산했던 대통령 기록물에 대한 사본 1부를 복제하여 사저에 당시 사용하던 e-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고 필요할 때마다 열람하는 임시적인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때문에 청와대와 일부 수구 언론에서 주장하는 '자료의 무단 유출'이란 표현은 전혀 적절하지 않으며, 분명히 모든 진본은 대통령 기록관으로 이관하였다.

물론 현재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의 사본 확보에 대한 부분은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는 부분이다. 이러한 사본 확보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에 의한 프로세스가 처음으로 진행된 상황에서 '열람권 확보'가 구축되지 않는 현실적인 환경 하에서의 '임시적인 방편'이었으며,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 측에서도 이 '열람' 시스템이 구축되는 대로 사본을 '반환 내지는 파기'를 하겠다고 재임 말기부터 논의를 하여 인수위 시절에도 협의를 했던 내용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정권의 인수와 활용에 필요한 기록들은 따로 분류하여, 이미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시절에 17대 대통령직 인수 위원회와 여러 차례 논의가 되었으나, 정작 당시에는 인수위는 참여정부와는 차별되는 정책 발표에 여념이 없었으며 그들에게 넘겨주겠다던 참여정부의 기록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이는 국민일보의 보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결국 이 문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요구하는 대로 '전용선에 의한 전직 대통령의 열람권 허용'이라는 문제가 기술적으로 해결되는 동시에 모두 해결되는 문제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가 6월 초순부터 이 문제를 가지고 문제를 삼기 시작했다. 국가 기록에 대한 '무단 유출'이라는 무식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참여정부 시절 구축된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과 그 프로세스에 대해 한번만이라도 확인했다면 도저히 이런 식으로 사실을 호도하여 주장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측이 소유하고 있는 참여정부 시절 생산된 대통령 기록물 사본에 대한 회수를 주장했다. 이는 이러한 국가기록관리 시스템과 프로세스에 대해 공부를 하거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단히 정치적인 주장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기록물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강력한 정치적 파급력을 지닌 기록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교체시 정치보복이 서슴없이 자행되던 과거에는, 언제나 대통령 퇴임과 더불어 자신들의 정치 및 정책적 과오도 포함된 방대한 양의 정부 및 대통령 기록들이 대부분 소실되거나 사저로 이동되었다.

이는 국가기록원에 있는 역대 과거 정권 기간동안 생산된 대통령 기록물은 이승만 7400건, 박정희 3만7600건, 전두환 4만2500건, 노태우 2만1200건, 김영삼 1만7000건에 불과하다는 것을 본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기록물은 이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엄청난 양인 825만건이라는 수치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왜 재임시절 '역사적 평가'에 대한 언급을 자주 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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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대통령 기록물의 성격상 당연히 전직 대통령이 생산한 기록물에 대해 현 대통령과 정부가 '국가기록'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유권'과 '열람권'까지 주장하고 나선다면, 대체 어떤 대통령이 자신의 치부까지 담긴 기록을 고스란히 남기겠는가. 현 청와대가 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지금과 같은 작태는 취임 직후 '로그인 사건'과 더불어 지난 10년간 국가기록관리시스템이 어떻게 진일보하여 왔는지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전혀 준비는 물론이고 인식도 하지 못했다는 반증일 따름이다.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아마도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측 인사들이 청와대에 들어가서 보니 참여정부의 기록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으니까 당황스러웠을 수 밖에. 그래서 뒤적거려보니까 그 기록이 사저로 이동되었고. 대통령 기록관에 이관된 것은 법으로 볼 수 없으니까 사저의 기록을 유출이라고 호도하고 여론몰이를 해서 되찾아와 꼬일대로 꼬인 대내외 정국에 대한 해법을 찾아볼 요량이었겠지. 물론 털면 먼지안나는 사람 없다고 뒤져서 뭔가 꼬투리를 잡으면 국내 정국 전환용으로 더욱 좋고. 겨우 이 정도 생각으로 접근했을 것이 너무나 뻔하지 않는가. 어쩌면 집권층이 이렇게나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다를 수 있을까. 그저 한숨만이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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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부활한 대통령 기록물 관리의 유지를 위해.

세계 기록유산으로도 지정되었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조선왕조 시절 국왕이 붕어하면 사관이 기록한 사초와 임금의 거동 등과 관련된 시정기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으며, 직필을 바탕으로 잘잘못을 모두 가감없이 기록하였기에 대신은 물론 신임 국왕도 수정이나 열람을 요구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러한 관행을 존중하였다. 자신들의 공과는 단지 기록을 바꾼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역사'라는 이름 속에서 평가할 수 있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이나 권신이 강압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열람하는 경우에는 직필을 했던 사관을 비롯한 다수의 정치적 희생자가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이는 그 기록이 지닌 성격상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연산군 시절의 '조의제문'으로 빚어진 무오사화가 그러한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시대는 달라지고 정치제도도 바뀌었지만 대통령 기록물의 성격은 이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한 국가의 전임 통치자가 최대한 가감없이 남긴 기록물에 대한 성격을 감안한 법적 보장도 무시하고 법률을 개정한다느니, 검찰에 고발하겠다느니의 치졸한 협박을 통해 모두 내놓으라는 식의 발상은, 차후 그 기록에 담겨진 정보를 공유하고 활용해야 할 국민들을 무시하는 처사이며 전근대적인 국가 권력의 폭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청와대는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당신들의 임기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4년하고도 절반 정도 남았을 뿐이다. 지금 정략적인 목적을 위해 제멋대로 법을 뜯어 고치고 이제서야 다시금 정착하기 시작한 기록관리에 대한 문화를 무너뜨린다면, 당신들 역시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게 될 때 노무현 전 대통령만큼이나 떳떳하게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기록을 남길 수 있겠는가. 대답은 뻔한 것이 아닌가. 결국 한국의 정치문화는 과거의 암울한 시대로 퇴행하는 것이다. 국가적으로 역사적으로 중대한 사안에 대해 수많은 청문회가 열려도 '기록'이 남지않아 진실을 확인할 수 없고 증명할 수가 없어 의혹과 추정만이 난무했던, 그래서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던 그 시절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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