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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연개소문傳'
 

말 그대로 고구려 말기에 독재와 핏빛으로 물든 절대 권력자였던 연개소문을 재조명한 책이다. 그리고 이 시기를 고증할 사료들이 부족하지만 전적으로 당시 중국측 사료들(주로 구,신당서)을 맹신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며 (이 당시 중국측 사료는 당 태종 이세민의 주도 아래 관찬사서 편찬이 시작되던 시기였으며 화이사관, 중화주의 인식으로 주변국-四夷-을 바라보았던만큼 사료라고 하더라도 객관성이란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신라, 고려측의 사료와 일본의 사료들과 그간의 연구논문들을 비교 분석하여 상당수 누락되거나 생략된 역사적 사건과 정황들을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복원해내고 있다. (그 참고자료 중에는 다니던 학과에서 -국내에서 12명에 불과한- 고구려사를 전공하신 여호규 교수님의 논문도 자주 보였다.)

책은 연개소문의 집권과정과 성향, 연개소문 집권기에 벌어진 1차, 2차 그리고 사후의 3차 고-당 전쟁에 대해 사료들을 비교분석하며 사실과 가깝게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고구려의 패망과정과 그 이유들을 상세히 분석하고 있어, 동북아시아의 대제국이었던 고구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아쉬움만큼이나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식을 제공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연개소문이 펼친 대당 강경책 중심의 독재 정치는 비록 그의 뛰어난 능력으로 연이은 고-당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유지될 때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그렇게 그를 중심으로 구성된 독재 체제는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그가 사망하게 되자 급격히 붕괴되는 모습을 보이며 결국 이는 고구려 멸망으로 이어지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보았을 때.

독재 정권이라는 것이
본래 독재자 개인의 능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체제이기에 살아 생전에는 겉으로 보기에 문제가 없어보여도, 당사자가 중심에서 사라지게 되면 연개소문 사후와 같이 급속히 붕괴되며 권력 투쟁등의 혼란을 야기하거나 박정희 정권과 같은 새로운 유사 독재자가 그 공백을 대신하는 경우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현재와는 다른 왕을 중심으로 한 전제 정치가 이루어지던 시기였지만, 오히려 그러했기에 고구려의 멸망은 독재 정권을 구축하고도 차마 왕위까지는 넘어서지 못한 연개소문의 정치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영류왕도 죽여버린 그였기에 신하가 아닌 왕위를 차지하여 그 위치에서 승계를 하였다면, 아마 그의 사후에 벌어지는 남생-남건,남산의 권력 투쟁 가능성은 상당부분 줄어들며 안정적인 정권승계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본질적으로 권력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3형제간의 분란은 왕위의 여부와는 상관이 없을 듯도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연개소문은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왕위 찬탈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 보다는,
어쩌면 자신의 뜻대로 정치를 주관할 수 있는 대막리지라는 위치에서 만족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한 나라의 흥망을 한 개인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을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들이 존재하는 것이지만.

지극히 편의주의적이고 위험한 생각인 것임은 알지만 이왕 그렇게 반대파를 대규모로 숙청하고 정권을 잡은 것인만큼 조금 더 독하게 굴어 왕위를 차지하였으면 어땠을까? 라는 어리석은 가정을 하는 것은 현재 어지럽게 벌어지는 중국의 동북공정 등의 현상에 배타적 민족주의가 나에게도 자리하고 있기 때문인가.

당시에 살아가는 인물들은 나름대로의 주관들을 갖고 민족이라는 개념에 앞서 국가라는 틀에서 치열하게 살아갔다.

사이를 정복하려는 야심을 가진 당 태종 이세민, 그러한 팽창주의에 맞서 고구려를 진두지휘한 대막리지 연개소문.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에 그저 신라를 지키려던 김춘추, 김유신. 나당 연합군에 무너져가는 백제를 구하려했던 흥수, 성충, 계백.

다들 정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간 것이다.

그래도 책을 덮는 순간 어쩔 수 없는 아쉬움과 무리라는 것을 알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들이 그렇게 살았던 한반도에서 한참이 지난 지금 이 곳에서 당시에 그러한 선택을 했던 그들의 후예로 살아가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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