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손오. 그리고 천하통일.

삼국지에 등장하는 삼국은 모두 ‘천하통일’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었을까. 패왕으로써 한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천하의 질서를 창조해 내려고 했던 조조의 위. 그리고 전한과 후한을 거치며 400년 유구의 역사를 지닌 한을 계속적으로 이어가려했던 유비의 촉. 적어도 이 두 나라는 삼국지연의 전편에 묘사되는 행적을 보았을 때, 자신들만의 신념에 의한 천하통일을 꿈꾸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해 아마도 다수의 사람들은 강남지역에 또 하나의 국가를 이루었던 오에 대해서는 긍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손권이 통치하던 시기의 오는 ‘No'라는 부정적인 답변을 들을 가능성이 높다. 손권은 형 손책이 임종시에 남겼던 평가처럼 창업보다는 수성에 더 어울리는 군주였다는 점은, 그의 재위 기간 동안에 보여준 통치 스타일을 감안했을 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조조의 대군과 맞섰던 적벽대전을 극적인 대승으로 이끌면서, 곧바로 형주 북부로 진격하고 익주까지 바라보았던 시기. 적어도 이 시기까지는 손권도 아버지 손견과 형 손책의 꿈이기도 했을 손가에 의한 ‘천하통일’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이 시기의 손오에 의한 천하통일로의 ‘가능성’의 중심에는 그 누구도 아닌 미주랑. 바로 ‘주유 공근’이 있었던 것이다.


2. ‘미주랑’ 주유가 꿈꿨던 천하통일지계.

*손책의 중원 진출에 대한 야망과 주유.
주유는 과연 중원 대륙을 통일하는 꿈. 즉 천하통일에 대한 야망이 있었던 것일까. 결과론적인 접근으로는 ‘그렇다.’는 확답도 ‘아니다.’라는 부인도 할 수 없다. 그 역시 꿈을 향한 날개를 제대로 펴보기도 전에 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병사하기 직전까지 보여주었던 모습에서 유추해 보았을 때는 '그랬을 것이다.'라는 가능성에 좀 더 무게를 둘 수 있을 듯 싶다. 

주유는 군주이자 절친한 벗이기도 했던 손책에게 출사한 이래 군사적 참모 역할을 겸임하였고, 그와 함께 강남 지역을 빠른 속도로 하나씩 병합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양주지역의 군웅들을 대부분 평정한 이후 크게 확장된 지역과 늘어난 병력 그리고 인재들을 바탕으로, 그들은 점차 드넓은 천하를 향해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이는 손책이 조조와 원소가 백마와 연진을 중심으로 대치하고 있던 관도대전 당시, 조조의 배후인 허창을 급습하려는 구체적 계획까지 입안하고 있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하북의 원소, 중원의 조조, 그리고 서주의 유비 등 아버지 손견과 비슷한 연배의 노회한 군웅들 사이에서, 손책은 물론 그를 보좌하고 있던 주유에게는 그들에 비해 이십여년 가까이 어린 ‘젊음’이라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 젊음에서 비롯되는 ‘패기’를 바탕으로, 충분히 천하를 두고 경합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차이만큼이나 정치적 경험이나 술수가 부족했던 탓일까. 조조의 배후를 노리던 손책은 곽가의 평가와도 너무나도 유사하기도 한, 그래서 더욱 ‘조조의 술책’으로 의심되는 자객의 기습(연의에서는 허공의 복수를 노리는 식객들로 묘사되고 있다.)을 받게 되고, '소패왕'이라 불리우며 양주 지역 평정 때 보여준 놀라운 기량을 천하를 향해 펼쳐 보이기도 전에 사망하기에 이른다. 당시 그의 나이는 26세였다. 그리고 손책의 유산은 아우인 19세의 손권에게 고스란히 이어받게 된다.

강력한 공격지향적 성향을 지닌 손책의 급사는, 그와 함께 천하를 도모하려 했을 혈기왕성한 주유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애석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손견과 손책 부자의 천하를 향한 꿈은 같은 핏줄인 손권이 아닌, 함께 바라보고 있던 주유에게로 이어지는 것이다.

*천하로의 재진출에 대한 계기. 적벽대전.


손권의 집권 이후 주유는 손권과 함께 형주지역의 출병 등을 통해 아버지 손견의 원수인 황조의 목을 베는 등의 전공을 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손책의 평가만큼이나 외정은 형만큼은 아니었던지 오랜 시간의 대치에도 불구하고, 유표와 형주 지역을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했다. 그 기간 동안 배후의 위협을 차례로 제거한 조조는 놀라운 전략과 대담한 전술을 선보이며, 열세임에도 원소의 대군을 격파하고 하북을 제압하면서 마침내 군웅할거의 일원에서 독보적인 세력으로 떠오르기에 이른다.

이런 조조가 남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최대의 군벌이었던 원소를 패망시키고 하북과 중원을 제압한 시점에서, 그가 형주 및 양주 지역으로의 진출을 늦출 아무런 이유는 없었다. 그 역시 천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 유비는 서주에서 조조의 배후 교란에 실패한 채 원소가 무너지는 조짐이 보이자 곧바로 형주 지역으로 남하하여 유표에게 의탁하게 된다. 이 때 유비는 삼고초려를 통해 제갈량을 등용하게 된다.

그리고 208년. 드디어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형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적벽대전의 서막이 오르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최전선에서 조조의 군과 맞부딪친 유비는 강릉으로 도주하면서, 역시 객관적으로는 열세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손권에게 전략적 동맹을 제안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호족의 영향력이 강한만큼 장소를 비롯한 주화파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주유는 그들의 의견을 제압하고 제갈량의 동맹 제안을 성사시켜, 손권의 지원하에 오의 수군을 이끌고 적벽대전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그리고 황개의 고육책에 이은 화공으로 조조의 대군을 격파하면서 중국 戰史에 길이 남을 대승을 거두게 된다.

화염과 핏빛으로 붉게 물들었을 석두관. 즉 적벽을 바라보면서, 아마도 자신에게 패퇴하는 그 조조의 배후를 수년 전 함께 노리던 천부적 싸움꾼인 손책을 가장 먼저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적벽대전에서의 주유의 대활약은 조조의 천하통일을 향한 파죽지세와도 같던 기세를 꺾어버림과 동시에, 중원의 패자인 조조와도 충분히 겨뤄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이는 주유 역시 조조 너머에 있는 천하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와 다름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승세를 탄 주유의 행보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적벽대전 이후 주유의 천하통일계책.  
주유가 바라보았던 천하통일의 계책은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아마도 주유는 노숙이나 제갈량이 논한 천하삼분지계가 아닌 북방의 조조, 그리고 남방의 손권. 이렇게 천하를 이등분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삼국의 형태를 유지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견제를 통해 안정성을 우선적으로 극대화하는 천하삼분지계와는 달리, 주유의 천하이분지계는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형태이다.

즉 천하이분지계에서 조조와 손권의 양 세력은 건곤일척의 대회전을 치러 승부를 내야만 하는, 긴장관계가 유지될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구도이며, 이는 어느 세력이고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마지막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의 승자는 천하통일의 꿈을 현실로 이뤄내는 것이다. 적벽전 이후의 주유의 구상에는 실로 이렇게 대담한 승부수가 숨어있었던 것이다.

당시 조조는 적벽전에서 패퇴한 이후 강릉마저 주유에게 빼앗기는 등, 형주 이남에 영향력을 대부분 상실한 상태였다. 그리고 적벽전의 동맹군이자 주유의 입장에서는 방심할 수 없는 유비는 형주의 남4군을 평정한 상태였다. 적벽전 대패의 후유증으로 조조는 곧바로 군을 일으킬 수도 없는 상태였을 뿐더러, 설령 무리하게 다시 군을 일으켜 남하를 시도한다손 치더라도 이미 처음 남하할 때와는 달리 압승은커녕, 승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어 있었다.

이렇게 조조가 적벽전의 패퇴로 인해 형주를 넘보지 못하고 있었을 이 시기가, 주유에게 있어서 천하이분지계의 방점인 익주를 도모할 수 있는 최고의 시기였다. 실로 조조의 입장에서는, 이것을 저지할 방도가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조가 주유보다 먼저 익주를 차지하려면 한중의 장로는 물론 옹, 양주의 마초를 제압하고 들어가던가, 아니면 형주로 남하하여 주유가 가려던 강릉을 기점으로 이릉을 거쳐 백제성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조조가 재남하하면 형주 남부의 유비도 움직이기 때문에 이도 여의치 않는 방법이다. 어떤 방법을 취하든 주유가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 직접 익주로 진입하는 것보다 시기적으로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주유가 도중에 병사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정사의 기록처럼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 신속하게 익주를 도모하고 익주, 형주, 양주로 이어지는 국가를 성립할 수 있었을 것이며, 서량의 독자적 세력인 마초와도 연계를 도모하여 조조와 최후의 자웅을 겨루는 천하이분지계를 성사시켰을 것이다.

*주유의 천하이분지계와 유비의 향방.



여기에서 형주 남부에 주둔한 유비의 향방 역시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실제로 역사에서는 병사한 주유 대신 유비가 익주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만약 주유가 병사하지 않는다는 가정을 해본다면, 사실상 유비도 조조와 마찬가지로 그다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만약 유비가 먼저 익주로 움직이려는 행동이 보인다면 당연히 주유가 좌시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며, 이로 인해 양 세력 사이에 국지전 수준을 뛰어넘는 전쟁이 발발한다면, 이는 조조에게 있어서 전략적인 호기가 되었을 것이다. 혹은 주유가 익주로 향한 사이 유비가 강릉을 비롯한 형주 남부 전역을 장악한다면, 곧바로 조조와 전선을 접경하게 됨과 동시에 양주와 익주에서 협격이 가능한 손권과는 적대관계가 되는데, 이 역시 유비가 취할 수 있는 현명한 전략적 선택은 아니다.

즉, 실질적으로는 주유가 익주로 향하더라도 형주 남부 4군에 묶여있는 유비가 택할 수 있는 전략적 행동의 폭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때문에 주유의 익주행이 성공했더라면, 유비 세력은 지속적으로 견제받으면서 오의 일원으로 반강제적으로 편입되거나, 아니면 조조는 물론 주유 및 손권과 적대관계가 되더라도 무력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비가 이끄는 세력의 면모를 보았을 때, 후자의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판단되지만, 실제로 이러한 경우가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어떻게 될지 예상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주유의 익주 공략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을 경우, 유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촉과 같은 독자적 세력을 형성하지 못한 채, 주유에게 제압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주유의 천하이분지계가 성공적으로 성사되었다면, 조조와 손권은 동으로는 합비부터 서로는 한중지역까지 매우 길게 전선을 맞대게 된다.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에서 이전의 관도대전이나 적벽대전, 혹은 그를 능가하는 대규모 전쟁을 몇 차례 치르면서 승기를 잡아가는 세력이 천하통일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을 것이다.


3. 주유의 병사와 함께 사라진 손오의 천하통일.  

하지만, 적벽전 이후 2년여 만에 주유가 돌연 병사하면서, 그가 계획하고 있었을 모든 계책도 동시에 사라지게 된다. 유비를 늘 껄끄럽게 생각하며 최후에는 적이 될 것으로 상정하던 주유와는 달리, 그의 후임으로 임명된 노숙은 친유비적 성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와 유사한 계책을 손권의 입장에서 구상하고 있었던 그였기에, 조조와 맞서기 위해서는 유비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는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주유와 노숙의 유비에 대한 군사 전략적 접근의 차이는, 주유 사후 오의 국가적 전략 변화로 이어지게 된다. 동시에 손권 역시 주유가 구상하였을 천하이분지계를 포기하고,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와 같은 방식을 택하게 된다. 즉 형주를 유비에게 양도하고, 조조와 맞서게 하게끔 하였던 것이다.

유비가 노골적으로 익주를 도모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때에도, 오에서는 익주를 선수치려는 움직임은 없었다. 오히려 유비에게 익주로 들어가는 대신 형주를 되돌려 달라는 식의 약조를 내걸게 되는데, 이는 주유가 생존해 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후 손권의 오에서는 더 이상 주유의 천하이분지계와 같은 원대한 전략으로 천하를 논하려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된다. 대신 관우의 배후를 기습하여 병합한 형주와 양주, 장강을 끼고 있는 두 주에 걸친 '오'를 수성하는데 만족하는 국가가 되고 만다. 이는 이전의 손견, 손책의 부자는 물론 주유까지 천하를 노리려 했던 것과는 매우 다른 지향점을 지닌 국가로 변모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국가적 전략의 변화에는 단지 주유의 죽음이라는 것 이외의 국내외의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동시에 시간이 지날수록 천하를 노리려는 전략을 세울만한 유동성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었던 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듯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으로 돌아서버리게 된다. 어쩌면 천하를 꿈꾸다 일찍 스러져버린 아버지와 형, 그리고 그 형의 존재감과 유사했을 주유가 바라본 길과 손권이 바라보고 있는 길은 애초부터 같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주유의 죽음은 그 자체로서 천하이분지계의 실패를 뜻함과 동시에, 손권에게 지속적으로 천하를 꿈꿀 수 있게끔 할 영향력을 지닌 마지막 무장이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반면 유비에게 있어서는 다시 올 수 없는 천운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천하이분지계의 시작' 대신, 우리가 익히 알게 될 '천하삼분지계의 완성'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Written by IronmasK98

'연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갈공명과 관우의 대립 : 2인자 다툼설  (3) 2009.02.20
'기린아' -강유 백약-  (3) 2008.01.18
관우는 명장인가?  (1) 2006.05.09
'비장' -여포 봉선-  (2) 2005.07.28
'상산' -조운 자룡-  (0) 2005.07.2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