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에 집에 내렸갔을 때, 잠시 서점에 들렀다가 눈에 띄어서 샀던 책 중에 하나. 사실 '살림지식총서'라는 타이틀로 나오는 이 핸드북 수준의 책들은 작고 가벼워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상당한 수준의 내용들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구입한 '보수와 진보의 정신분석'도 마찬가지다. 특히 논문을 정당과 관련된 주제로 준비하고 있는만큼 새로운 관점에서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어서 좋았으며, 읽고 나서도 상당부분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 많았다.

저자는 '보수'와 '진보'라는 용어 정의를 서구에서의 파생 배경과 철학적 관점에서 접근으로 의미를 규정하며, 그를 바탕으로 다시 한국적 '특수성'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사실 오늘날 한국에서의 '보수'와 '진보'는 여전히 이념지향적 성격으로 규정되고 있으며, 특히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함부로 포괄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도, 특정 정당이 슬로건으로 내세우거나 정책적으로 접근하게 되면 그것이 곧 '보수' 또는 '진보'로 규정되어지는 '협소함'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자 역시 이러한 부분에서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의 전개과정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학'을 전공했던 필자도 매우 공감이 가는 부분일 수 밖에 없었다. 일본 패망 뒤 미국과 소련의 의지가 아닌 한반도에서의 한국 민족의 자력에 의해 '일제의 잔재 세력'을 프랑스의 친독파 숙청과 같이 명백하게 청산하고 그 이후 '좌-우'의 이념의 대립이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천천히 융합되어 갔더라면, 사사건건 대립하는 오늘날의 이 현실과는 매우 다른 정치적 토양을 쌓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우리에게는 이러한 자주적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고, 해방 후 5년만에 냉전이 열전으로 '화'하게 되면서 대한민국에서는 '좌'에 대한 극심한 국가적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그리고 이후 잇달아 들어서게 되는 군사독재정권들이 정권의 정당성 확보로 사용하게 되고, 그 후유증은 민주화를 거친지 20년이 훌쩍 넘은 현재까지도 정치와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 그렇기에 한국에서는 여전히 서구 사회와 같은 건전한 정치적 논의의 장으로써의 '진보'와 '보수'가 아닌, 기형적이고 파벌적인 정치적 대립현상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저자는 '퇴행성'으로 규정하고 있다.
 
저자는 결론에서 갈수록 다극화 및 다양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냉전 이데올로기 시절처럼 '진보'와 '보수'로써 모든 사안을 포괄적으로 다룰 수는 없으며, 개별 사안에 대해 합리적인 근거와 판단을 바탕으로 세분화하여 접근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는 필자도 공감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제도권 정치에 반영이 되어야 할 지는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는 지난 촛불집회에 대해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주문하기도 했던 '정당의 역할'의 정상화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지극히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혀있는 한국의 후진적인 정치판이 과연 이러한 건전한 의지를 흡수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촛불집회를 경험하면서 다양한 사회 및 학계 차원의 논의를 통한 해결책의 제시에도 불구하고 반년이 지난 지금 실질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기에는 우리 사회의 잠재력이 너무나도 아깝다. 민주화 이후 20여년간 반복되고 있는 '퇴행적' 정치 행태에 질렸다면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국민들도 '사익'이 아닌 '공익'적 관점에서 함께 모두가 다 잘 살 수 있는 사회적 변화에 조금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듯 싶다. 민주주의에서의 정치적 변화는 '무관심'이 아닌 '관심'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수와 진보의 정신분석'이라는 책에 3,300원 정도는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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